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증권 배구단 (문단 편집) == 역사 == 1983년에 창단하며 신생팀에 대한 배려로 [[장윤창]], [[이경석(배구)|이경석]], 정의탁, [[류중탁]] 등 당시 국가 대표 엘리트들을 비교적 적은 돈으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 장윤창은 당시에는 [[강만수(배구)|강만수]]의 후계자로 꼽힐 정도로 강력한 스파이크를 보여주었고 나중에는 경험치까지 쌓여서 배구판에서 꽤 오래까지 경기력을 유지했다. 국내 최초로 스파이크 서브도 보여주던 최고의 라이트 공격수로서 제1 공격수 역할을 90년대 초반까지 담당했다. 거기다 정의탁과 류중탁[* [[류윤식]]의 아버지.]이 책임지던 센터진은 고려증권 최고의 속공을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고려증권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스타 플레이어들이 노쇠화 되기 시작할 때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자동차서비스]]의 강력한 [[현질]] 스카우트가 개시되었고, 그렇게 힘이 빠져가나 할 때 [[진준택]] 감독의 부임과 더불어 [[박삼용]]-[[이성희(배구)|이성희]] 콤비를 중심으로 문병택-이수동-박선출 등의 선수들로 압도적인 스타는 없었지만 그만큼 끈끈하고 유기적으로 돌아가던 시스템을 구축하여 1988~1989시즌 제6회 대통령배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이후에도 스타 플레이어들을 중심으로 화려하고 선 굵은 배구를 선보이던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팽팽한 라이벌 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로 모기업인 고려증권이 부도가 나면서 팀운영이 어려움에 빠졌고, 숙식도 여관방에서 해결해야 했다. 당시 배구협회가 출전비를 지원해서 간신히 1997~1998시즌에는 출전했지만, 결국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해체되었다. 1996 슈퍼리그 결승 제4차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자동차서비스]] vs 고려증권의 명승부 게임. 고려증권의 신들린 듯한 수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TCimimmPIJE|링크]] 이 당시는 서브권이 있을 때만 점수가 올라가던(5세트 제외) 시절로, 현행 랠리 포인트제 도입은 고려증권이 해체된 뒤의 일이다. 처절함의 끝을 보여준 4차전 경기 영상이다. [youtube(fTC9Lxj9CCg)] 여담으로 국내 다른 스포츠 종목의 팀 중에서는 [[KBO 리그]]의 [[해태 타이거즈]]와 여러모로 비슷한 컬러를 갖고 있었다. 두 팀 모두 준척급 이상의 엘리트 선수들이 다수 포진했고[* 고려증권에 장윤창, 정의탁, 류중탁, 이경석, 어창선, 박삼용, 이성희 등이 있었던 것처럼 [[해태 타이거즈]]에도 [[선동열]],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김성한]], [[김종모]], [[이순철]], [[이건열]], [[김정수(1962)|김정수]], [[장채근]], [[조계현]], [[문희수]], [[신동수(1966)|신동수]], [[송유석]], [[이강철]], --[[이호성]]----, [[정회열]], [[이종범]], [[이대진]], [[임창용]], [[김상진(1977)|김상진]], [[장성호]] 등 엘리트 선수들이 많았다.] 특히 특정 몇몇 선수에 의존하는 플레이보다 끈끈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과 정신력으로 강팀에 맞섰다. 또 이같은 조직력과 정신력을 앞세워 1980~1990년대 리그를 평정하기도 했다. 두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응용]] 감독과 [[진준택]] 감독 모두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선수단을 장악하는 스타일로 유명했다는 점도 비슷했다.[* 진준택 감독은 선수 전원에게 무기한 사직서(사직 날짜가 적혀지지 않은 사직서를 무기한 사직서라고 한다.)를 받아놓고 선수가 은퇴할 때까지 보관했다고 한다.] 게다가 두 팀 모두 모기업인 고려증권과 [[해태제과]]의 자금력이 다른 팀의 모기업에 비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나란히 [[1997년 외환 위기]]로 모기업이 부도를 맞았던 것도 똑같다. 다만 해태 타이거즈는 [[기아자동차]]가 인수해서 [[KIA 타이거즈]]로 부활했지만, 고려증권은 결국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대로 해체되는 비운의 결말을 맞이하였다. 모기업의 부도로 결국 마지막이 되어버렸지만, 슈퍼리그 1997-98 시즌 고려증권 배구단의 사투는 많은 배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외환위기의 살벌한 한파 속에서 특히 순식간에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된 수많은 넥타이 부대들이 고려증권 경기가 있는 날이면 체육관을 가득 메웠고, '''고려증권 힘내라'''라면서 열광적인 응원을 하였다. 그들은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도 꿋꿋히 이미 망해버린 고려증권의 로고를 달고 사력을 다해 싸우는 선수들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다. 그렇게 고려증권 배구단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결국 슈퍼리그 4강을 마지막으로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금도 인터넷에 보면 그 시절의 고려증권 배구단을 추억하는 수많은 이들의 글을 찾을 수 있다. 2017년 황금 시대의 주역들과 인터뷰를 했다.[[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703482&memberNo=25906403|#]] 창단식 영상이 아직 남아있다.[[http://www.ehistory.go.kr/page/view/movie.jsp?srcgbn=KV&mediaid=20142100&mediadtl=38475&gbn=DK|대한뉴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